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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패 권력을 단죄 하고 주지사 당선되면 약속을 지키겠다고 연설합니다.

 

 

영화 <시민 케인> 정보 및 줄거리

영화는 거대한 저택 '제나두'에서 언론 왕 찰스 포스터 케인이 눈 내리는 스노볼을 떨어뜨리며 "로즈버..."라는 한마디를 남기고 숨을 거두는 장면으로 시작된다. 케인의 사망 소식이 전 세계에 보도된 후, '뉴스 온 더 마치'의 편집장은 케인이 남긴 마지막 단어 '로즈버드'의 의미를 파악하라는 지시를 기자 톰슨에게 내린다. 다각적 회상(플래시백): 톰슨은 케인과 가까웠던 5명의 인물(후견인 대처의 일기, 사업 파트너 번스타인, 친구 프리랜드, 두 번째 아내 수잔, 저택 집사 레이먼드)을 찾아가 인터뷰한다. 텍사스의 가난한 집안에서 광산 소유권을 얻어 거부가 된 후, 후견인 대처의 손에 이끌려 부모와 헤어진다. 언론 제국 건설: 성인이 된 케인은 '인콰이어러' 지를 인수하여 자극적이고 파격적인 보도로 대중의 지지를 얻으며 거대 언론 제국을 세운다. 대통령의 조카인 엠마와 결혼하고 뉴욕 주지사에 출마하지만, 무명 가수 수잔과의 스캔들이 폭로되어 정치적 생명이 끝난다. 수잔과 재혼한 케인은 거대한 제나두 저택을 짓고 스스로를 고립시킨다. 수잔을 강제로 오페라 가수로 만들려 하지만 실패하고, 결국 수잔마저 그를 떠난다. 톰슨 기자는 여러 인물의 증언을 들었음에도 결국 '로즈버드'의 진짜 의미를 밝혀내지 못하고 제나두를 떠난다. 그러나 영화의 마지막 순간, 카메라가 케인의 유품을 정리하며 불태우는 쓰레기 더미를 비춘다. 그곳에서 불길에 휩싸여 타들어가는 소년 시절 케인의 '썰매'가 등장하며, 그 위에 "Rosebud"라는 글자가 새겨져 있음이 밝혀진다. <시민 케인>을 깊이 있게 이해하기 위해서는 19세기말부터 20세기 초 미국 사회의 정치·경제적 상황을 알아야 한다. 옐로 저널리즘의 대두 19세기말 미국에서는 신문 판매량을 늘리기 위해 자극적이고 폭력적이며 픽션에 가까운 기사를 쏟아내는 '황색 언론'이 팽창했습니다. 영화 속 케인이 전쟁을 부추기거나 자극적인 헤드라인을 조작하는 모습은 실제 당시 황색 언론의 형태를 그대로 반영한다. 케인의 실제 모델은 19세기의 거대 언론 재벌 (윌리엄 랜드돌프 허스트)입니다. 허스트는 자신의 삶과 불륜 관계, 사업 방식이 영화에 적나라하게 묘사되자 분노했다. 허스트는 자신의 언론 매체를 동원해 <시민 케인>에 대한 비평과 광고 게재를 전면 금지했다. 영화 제작사인 RKO에 거액을 제시하며 필름 자체를 구매해 파기하려 시도했다. 이로 인해 <시민 케인>은 개봉 당시 상업적으로 실패를 거두었으나, 이후 비평가들에 의해 재평가받으며 영화사의 거장으로 남게 되었다. <시민 케인>이 오늘날까지 최고의 영화로 꼽히는 이유는 연출 기법의 대대적인 혁신 덕분이다. 딥 포커스 촬영 감독 그레그 놀랜드와의 협업을 통해 전경, 중경, 배경에 있는 모든 인물과 사물에 동시에 초점을 맞추는 기법을 선보였다. 이를 통해 화면 안의 시각적 레이어와 인물 간의 권력 구도를 한 샷에 담아냈다. 천장 노출 세트와 로우 앵글 당시 할리우드 세트장은 조명 설치를 위해 천장을 뚫어놓는 것이 일반적이었으나, 웰스는 천장에 천을 덧대어 실제 방처럼 연출했다. 앙각 촬영을 통해 케인의 거대함과 동시에 압박감을 시각적으로 극대화했다 한 인물의 삶을 시간순으로 보여주는 것이 아닌, 여러 인물의 기억과 증언을 통해 파편적으로 재구성하는 입체적 몽타주 구조를 완성했다. 화면 전환 시 사운드를 연결하는 '사운드 브리지' 기법과 시간의 흐름을 대사 한 마디로 단축하는 편집 기법을 적극 활용했다.

https://namu.wiki/w/%EC% 8B% 9C% EB% AF% BC%20% EC% BC%80% EC% 9D% B8 출처(나무위키)

 

영화 등장인물

(찰스 포스터 케인) 어린 시절 부모와 떨어져 막대한 유산을 물려받은 후 언론사 '인콰이어러'를 인수해 거대 언론 제국을 건설한다. 권력과 사랑을 모두 갈구하지만, 타인을 통제하려는 독선적인 성격으로 인해 결국 외롭게 생을 마감합니다.(제리 톰슨) 케인이 임종 직전 남긴 유언 '로즈버드'의 의미를 찾기 위해 케인의 주변 인물들을 취재하는 관찰자다. 영화는 그의 취재 과정을 따라 플래시백으로 진행된다.(제디다이아 프리랜드) 케인의 가치관을 가장 깊이 이해하면서도, 케인이 초심을 잃고 독재적으로 변해가자 가장 먼저 그에게 비판적 칼럼을 작성하며 대립하는 양심적 인물이다.(수잔 알렉산더 케인) 재능 없는 오페라 가수였으나 케인의 집착으로 인해 강제로 무대에 서게 된다. 케인의 그늘 아래서 통제당하며 괴로워하다 결국 그를 떠난다.(월터 팩스턴 대처) 어린 케인을 집안에서 데려와 금융가로 키우려 했던 자본가다. 자본주의 권력의 대명사로 케인과는 끊임없이 대립 관계를 형성한다.(번스타인) 케인의 성공과 몰락을 곁에서 지켜보며 끝까지 그에게 충성을 바치는 인물이다.

https://www.google.com/search?q=%EC%8B%9C%EB%AF%BC+%EC%BC%80%EC%9D%B8+%EC%97%AD%EC%82%AC%EC%A0%81+%EB%B0%B0%EA%B2%BD&gs_lcrp=EgZjaHJvbWUyBggAEEUYOTIKCAEQABiiBBiJBTIHCAIQABjvBTIHCAMQABjvBTI HCAQQABjvBTIHCAUQABjvBdIBCTEzNTg0 ajBqNKgCALACAA&sourceid=chrome&source=chrome.ob&ie=UTF-8 출처(구글)

국내 해외 평가 반응

오손 웰스 감독의 영화 시민 케인은 현대 영화 언어를 완성했다는 평가를 받는 영화사상 최고의 마스터피스다. 해외 반응은 비평계와 영화인들 사이에서 절대적인 추앙을 받는다. 로튼 토마토 신선도 지수 99%와 메타크리틱 100점을 기록하고 있으며 영국 영화 전문지 사이트 앤 사운드가 선정하는 세계 최고의 영화 투표에서 50년 동안 연속 1위를 차지하는 대기록을 세웠다. 딥 포커스 촬영 기법, 비선형적 서사 구조, 혁신적인 음향 연출 등 시대를 수십 년 앞서간 기술적 및 예술적 시도로 영화라는 매체의 가능성을 확장한 거작으로 꼽힌다. 1941년 개봉 당시에도 비평가들의 극찬을 받았으나 영화의 모델이 된 언론왕 윌리엄 랜돌프 허스트의 거센 방해와 언론 보도 통제로 인해 상업적으로는 큰 어려움을 겪었다. 관객수 및 흥행 측면에서는 개봉 당시 실패작에 가까웠다. 1941년 첫 개봉 당시 북미 박스오피스 수익은 약 150만 달러에서 160만 달러 수준에 그쳐 제작비 대비 손실을 기록했다. 1940년대 초반 미국 평균 영화 티켓 가격인 약 0.25달러에서 0.35달러 수준으로 추산해 보면 개봉 당시 북미 관객수는 약 400만 명에서 500만 명 안팎으로 추산되며, 당시 대중적인 대흥행작들에 비해 매우 낮은 수치였다. 그러나 1950년대 이후 프랑스 비평가들을 중심으로 재평가가 이루어지고 수차례 재개봉 및 문화적 재조명을 거치면서 단순한 흥행 수치를 넘어 인류 역사상 가장 영향력 있는 영화로 자리를 잡았다. 시대를 잘못 만난 불운의 천재작에서 영화사의 근본으로 거듭난 불멸의 명작이라는 점에는 전 세계 영화계가 이견 없이 동의한다.

 

완벽함을 모두 가졌지만 결국 순수했던 어린 시절의 단 하나의 온기조차 지키지 못한 한 인간의 쓸쓸한 몰락이 가슴 깊이 남고 와닿은 영화였다고 생각이 드네요, 혁신적인 카메라 각도와 연출 기법이 선사하는 시각적 압도감 덕분에 80년이 지난 지금 보아도 전율이 느껴지는 시대를 초월한 걸작입니다. 이영화를 보신 여러분의 생각과 의견을 댓글로 남게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