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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을 막아낸 대통령

 

"우드로 윌슨"줄거리

 

우드로 윌슨 (Woodrow Wilson) 1913.03.04 ~ 1921.03.04 민주당

 

🎬 영화 제목:《윌슨》(Wilson, 1944)

미국 제28대 대통령 우드로 윌슨의 삶과 정치를 다룬 대표적인 전기 영화 《윌슨》(Wilson, 1944)의 줄거리입니다.

1909년, 프린스턴 대학교 총장이자 개혁적 학자인 "우드로 윌슨"은 뉴저지 주지사
선거 출마 권유를 받으며 정치계에 입문한다.

당선 후 기득권 정당 세력에 맞서 개혁 정책을
추진하며 대중적 지지를 얻은 그는, 1912년 미국 대통령
선거에서 승리해 백악관에 입성한다.

대통령으로서 진보적인 '신자유(New Freedom)' 정책을 펼치며 국정을
이끌던 중, 유럽에서 제1차 세계대전이 발발한다.

"윌슨"은 미국의 중립을 지키려 애쓰지만, 개인적으로는
아내 엘런의 죽음이라는 큰 슬픔을 겪는다.

이후 이디스 골트와 재혼하며 마음을 추스른
그는 1916년 "전쟁을 막아낸 대통령"이라는 슬로건으로 재선에 성공한다.

그러나 독일의 무제한 잠수함 작전 등으로
국익이 침해되자, 윌슨은 결국 1917년 참전을 결정한다.

참전 후 연합국의 승리를 이끌어낸
그는 '평화를 위한 14개 조항'을 발표하고, 향후 세계 대전을
예방할 international 기구인 '국제연맹(League of Nations)' 창설을 강력히 추진한다.

프랑스 파리 평화회의에서 international적 협력을 끌어냈지만, 귀국 후 미국의
고립주의 세력과 헨리 캐벗 로지 상원의원의 강한
반대에 부딪혀 국제연맹 비준이 위기에 처한다.

이에 "윌슨"은 국민들을 직접 설득하기 위해 무리하게 전국 순회
연설을 강행하다가 뇌졸중으로 쓰러지고 만다.

건강이 악화된 상태에서도 국제연맹에 대한
신념을 꺾지 않지만, 결국 상원 비준은 실패로 돌아간다.

대통령직에서 퇴임하며
씁쓸함을 삼키면서도, 그가 뿌린 평화의
씨앗이 언젠가 결실을 맺을 것이라는 희망을 품은
채 백악관을 떠나는 "윌슨"의 모습으로 영화는 마무리된다.

 

역사적 배경

 

우드로 윌슨과 제1차 세계대전: 국제연맹 상원 비준 실패의 배경과 영향

19세기말부터 20세기 초까지 미국은 오랜 고립주의 전통을 유지해 왔다.
초대 대통령 조지 워싱턴의 퇴임사 이래 미국 외교의 기본 기조는
유럽 대륙의 분쟁에 개입하지 않는 것이었다.

그러나 제1차 세계대전의 발발과
독일의 무제한 잠수함 작전, 그리고 자머만 전보 사건 등은
미국의 안보와 국익을 직접적으로 위협하기 시작했다.

이에 따라 1917년, 우드로 윌슨 대통령은 "민주주의를 위한 안전한 세계를 만든다"는
명분을 내세워 파병을 결정했고 연합국의 승리를 끌어냈다.

승전 후 윌슨은 1918년 발표한 '14개 조항'을 통해 다자간
안전보장 체제인 국제연맹(League of Nations) 창설을 제안했다.

이는 힘의 논리에 의존하던 유럽식 집단안보
체제를 지양하고, 의회주의적 대화와 법에 기반한
세계 평화 질서를 구축하려는 최초의 시도였다.

하지만 1919년 프랑스 파리 평화회의에서
타결된 베르사유 조약을 가지고 돌아온 "윌슨"은 본국에서 강한 정치적 저항에 직면했다.

미국 상원 내 고립주의 세력과 공화당의
헨리 캐벗 로지 의원은 국제연맹 규약 제10조를 강력히 문제 삼았다.

제10조는 회원국 중 하나가 침략을 받을 경우 다른 회원국들이
집단적으로 개입해 상호 지원할 의무를 명시하고 있었다.

미국 상원은 이 조항이 미국의 주권을 침해하고, 의회의 선전포고 권한을 무력화하여
미국을 유럽의 원치 않는 전쟁에 계속 끌어들일 것이라고 지적했다.

정치적 타협을 거부한 "윌슨"은 상원을 우회하여
대중의 직접적인 지지를 얻고자 전국 순회 연설을 강행했다.

그러나 과도한 피로와 스트레스로 인해
뇌졸중으로 쓰러졌으며, 정상적인 국정 수행이 불가능해졌다.

지도력을 잃은 상황에서 1920년 미국 상원은
베르사유 조약과 국제연맹 안건을 최종 부결시켰다.

결국 미국은 자신이 주도하여 구상한 세계 평화 기구에 가입하지 못하게 되었다.

이 역사적 사건은 국제정치학에서 당위적 이상주의가 현실정치의 고립주의적 국익론과 충돌했을 때 일어나는 한계를 잘 보여준다. 국제연맹은 미국의 부재와 강대국들의 자국 이익 우선주의로 인해 실질적인 제재력을 상실했고, 이는 향후 제2차 세계대전의 발발을 막지 못한 구조적 원인 중 하나로 평가받는다. 윌슨의 시도는 실패로 끝났으나, 그의 구상은 훗날 제2차 세계대전 직후 설립된 유엔(UN)의 모태가 되었다.

 

총평

 

"우드로 윌슨의 번영과 한계가 남긴 역사적 교훈"

"우드로 윌슨"의 '국제연맹' 구상은 강대국 간의 비밀 외교와
힘의 균형에 의존하던 19세 기적 세계 질서를 지양하고, 법과 대화에 기반한 최초의
다자간 평화 체제를 구축하려 했다는 점에서 국제정치사에 거대한 족적을 남겼다.
그러나 이상주의에 입각한 원대한 비전은 미국 내부의
강력한 고립주의 정서와 의회의 벽을
넘지 못했고, 결국 주도국 없는 반쪽짜리 기구로 전락하는 한계를 드러냈다.

결국 "윌슨"의 정책적 좌절과 국제연맹의
무력화는 제2차 세계대전이라는
인류 최악의 비극을 막지 못하는 원인이 되었으나, 이 실패의
경험은 훗날 국제연합(UN)이라는 보다 견고한 집단안보
체제를 탄생시키는 중요한 밑거름이 되었다.
현실의 벽 앞에 무너진 선구적 이상주의가
어떠한 역사적 파급효과를 가져오는지 보여주는 명확한 사례다.